철도는 길을 만든다. 그러나 그 길 위에 어떤 도시를 세울 것인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인제가 다시 한 번 역사적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인제에 남긴 경험은 분명하다. 교통이 좋아진다고 지역경제가 반드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국도 44호선을 따라 형성됐던 상권은 쇠퇴했고, 사람들은 더 빠르게 인제를 지나쳐 갔다.
길은 넓어졌지만,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KTX 시대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의 확충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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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9기 인제군이 내놓은 '콤팩트시티'와 '정원도시' 구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흩어진 생활권을 하나로 연결해 도시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제가 가진 최고의 자산인 자연을 경쟁력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AI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행정과 농업, 교육, 지역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비전도 제시됐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인프라는 시작일 뿐, 발전의 완성은 아니다.
KTX가 개통된다고 사람들이 저절로 정착하지는 않는다. 역이 생긴다고 기업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관광객이 내려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머물 공간이 부족하면 다시 열차를 타고 떠날 뿐이다.
인프라는 사람을 불러오는 조건일 뿐, 사람을 머물게 하는 이유는 아니다.
인제가 준비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머무는 경제'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까지 많은 관광지는 '한 번 보고 가는 도시'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은 관광객의 숫자가 아니라 체류시간이다.
하룻밤 더 머무르고, 한 끼 더 먹고, 지역 상권에서 한 번 더 소비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관광은 지역경제가 된다.
인제스피디움과 정자리 관광단지, 백담사와 내린천, 자작나무숲과 곰배령 등 풍부한 관광자원은 이미 갖추고 있다.
이제는 각각의 명소를 연결해 사계절 체류형 관광벨트를 완성해야 한다.
숙박과 음식, 문화와 체험, 스포츠와 치유가 하나의 관광 생태계로 이어질 때 '1000만 관광객'이라는 목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산업이다.
인제는 더 이상 관광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지방소멸 시대에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KTX 시대는 수도권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시대다.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입지를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청정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산업, 산림치유산업, 스마트농업, 디지털 원격근무 산업 등 인제만의 특색을 살린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AI 활용 전략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최상기 군수가 "AI는 어디에 사느냐를 묻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기술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 의미다.
농업인은 AI로 생산성을 높이고, 학생은 수도권 못지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공무원은 행정 효율을 높이고, 소상공인은 AI를 활용해 마케팅과 경영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도시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세 번째는 정주환경이다.
인구는 일자리만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교육환경, 편리한 의료서비스, 수준 높은 문화생활, 안전한 생활환경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사람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콤팩트시티 전략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생활권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행정과 교육, 의료, 문화 기능을 집약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도시의 크기가 아니라 생활의 편리함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무엇보다 인제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의 교훈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당시 지역은 기대가 컸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지역은 교통의 혜택보다 통과도시라는 현실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이번 KTX는 달라야 한다.
역세권 개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상권과 연결하고, 관광과 연계하며, 산업과 연결하고,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교통망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통망을 활용하는 지역의 전략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민선 9기는 최상기 군수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3선 군정의 마지막 4년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비전을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군수 스스로도 "군수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이제 인제는 계획보다 실행이 중요하다. 군민과 함께 소통하며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약속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때, 인제는 지방소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국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KTX는 인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기회다. 그러나 철도가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철도를 성장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인프라를 경제로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며, 자연을 자산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선로가 아니라 비전이고,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다가오는 KTX 시대, 인제는 단순히 더 빨리 갈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더 오래 머물고, 더 살고 싶으며,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인프라를 진정한 지역발전으로 완성하는 길이며, 민선 9기가 반드시 증명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