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의료 격차는 곧 생명의 격차

전우호 (woogongws@nate.com) | 기사입력 2026/05/06 [14:47]

[데스크칼럼] 의료 격차는 곧 생명의 격차

전우호 | 입력 : 2026/05/06 [14:47]

설악산의 풍경은 여전히 장엄하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의료의 문제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인제와 고성에서 인구 1,000명당 간호사가 1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생명이 달라지는 현실’을 드러내는 경고다.

 

이 문제를 단순히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말로 덮어서는 안 된다. 이미 기사에서도 짚었듯, 본질은 ‘절대적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쏠림’이다. 신규 간호사들은 수도권과 대형병원으로 향하고, 지역은 비어간다. 이는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책이 만든 흐름이다. 더 나은 임금, 교육 기회, 생활 환경이 보장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국가가 그 ‘자연스러운 선택’이 만들어낼 불균형을 방치해왔다는 데 있다.

 

 

설악권 의료복지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이제 선택이 아닌 ‘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지역간호사제’는 선언이 아니라 강제력 있는 제도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히 지역 근무를 권고하는 수준으로는 효과가 없다. 장학금 지원, 등록금 면제, 공공의료기관 채용 연계 등을 통해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의무화하고, 그 대가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의무복무형 의료인 양성’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임금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권과 지방 병원의 임금 차이가 유지되는 한, 인력 분산은 기대하기 어렵다. 의료취약지에 대한 수가 가산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혜택이 실제 간호사의 급여로 연결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서 일하면 더 안정적이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신호를 분명히 줘야 한다.

 

셋째, 정주 여건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간호사 한 명이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옮기는 일이다. 주거 지원, 자녀 교육, 문화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임금을 올려도 장기 근무는 어렵다. 결국 의료 정책은 복지, 교육, 지역 개발 정책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넷째, 공공의료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민간 병원이 지역 의료를 떠받치기 어렵다. 설악권과 같은 의료취약지에서는 공공병원이 ‘최소한의 안전망’이 아니라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 간호사 인력도 공공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고용하고 순환 배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지방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악권의 의료 공백은 곧 국가 의료 시스템의 균열이다. 특정 지역에서 의료 접근성이 무너진다면, 그 파장은 결국 전체 사회로 확산된다. 감염병 대응, 고령화 대응, 응급의료 체계 모두 지역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그대로지만, 그 아래의 삶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병원이 있어도 간호사가 없고, 간호사가 있어도 오래 머물지 않는 현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료 격차는 곧 생명의 격차로 굳어질 것이다.

 

이제는 묻는 데서 그칠 때가 아니다. “왜 없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남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설악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단지 한 지역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최소한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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