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머문 자리에 남은 건 '바람'뿐… 설악을 지키는 쉼, ‘제로 웨이스트’ 캠핑

전우호 (woogongws@nate.com) | 기사입력 2026/04/22 [12:44]

[기획보도] 머문 자리에 남은 건 '바람'뿐… 설악을 지키는 쉼, ‘제로 웨이스트’ 캠핑

전우호 | 입력 : 2026/04/22 [12:44]

2026년 4월 하순, 인제군 기린면의 한 숲속 캠핑장. 주말을 맞아 텐트들이 가득 들어찼지만, 흔한 쓰레기 봉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고성과 인제의 사설 캠핑장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흔적 안 남기기(LNT, Leave No Trace)' 캠핑 현장이다. 과거 고성방가와 쓰레기 투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캠핑 문화가, 이제는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신인류'의 문화로 거듭나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게 아니라, 만들지 않습니다”

이곳을 찾은 캠퍼들의 장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와 실리콘 지퍼백이 가득하고, 음식은 미리 집에서 손질해와 음식물 쓰레기를 원천 차단한다. 설악산 자락에서 만난 5년 차 캠퍼 A씨는 "자연이 주는 위로를 받는 대가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며, 설거지조차 친환경 세제와 최소한의 물만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제와 고성의 일부 캠핑장은 아예 '쓰레기 없는 캠핑 존'을 지정해, 이용료를 할인해주거나 지역 특산물을 선물로 주는 등 캠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플로깅(Plogging) 캠핑’

단순히 쓰레기를 안 남기는 것을 넘어, 주변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고성 해변의 캠핑족들 사이에서는 아침 산책을 하며 해안가로 밀려온 플라스틱을 줍는 '플로깅'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이들은 수거한 쓰레기를 지역 내 업사이클링 센터에 기부하고, 그 대가로 지역 화폐를 받는다. 이는 외지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자연 보호라는 공동의 목표로 연결되는 새로운 상생 모델이 되고 있다.

 

 

캠퍼들의 ‘자부심’ vs 지자체의 ‘인프라 지원 고충’

성숙한 캠핑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지자체는 늘어나는 친환경 캠핑 수요에 비해, 공공 장소의 분리수거 시설이나 오폐수 처리 시설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캠퍼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는데, 이를 뒷받침할 행정 시스템이 더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악의 봄은 ‘사람의 흔적’이 없을 때 가장 아름답다

4월의 설악은 갓 피어난 연둣빛 잎사귀들로 가장 예민하고 아름다운 시기다. 이 귀한 풍경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를 자연이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LNT 캠핑'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에 설악을 사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올봄, 당신의 텐트가 머문 자리에는 오직 맑은 바람과 새소리만 남겨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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