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설악을 가르는 고속도로, 표를 얻기 위한 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우호 (woogongws@nate.com) | 기사입력 2026/04/27 [16:48]

[데스크칼럼] 설악을 가르는 고속도로, 표를 얻기 위한 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우호 | 입력 : 2026/04/27 [16:48]

또다시 고속도로 이야기다. 이번에는 설악권을 관통하는 노선이다. 포천에서 철원으로, 그리고 속초에서 고성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고속도로 사업이 내년 예산 반영을 목표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 지역 발전, 접근성 개선, 관광 활성화. 익숙한 명분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문제는 이 ‘익숙함’이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해왔다. 대형 SOC 사업이 얼마나 쉽게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선거를 앞두고는 “반드시 추진”, “조속한 통과”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지역 간 경쟁은 과열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린다. 이 도로가 정말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대가로 치르게 되는가.

 

특히 이번 사업은 단순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다. 설악권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 지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자연 생태축 중 하나다. 개발은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고, 도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생태계의 단절선이 된다. ‘연결’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분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논의의 중심은 여전히 ‘예산 확보’에 머물러 있다. 타당성 조사 통과 여부, 국비 반영 규모, 사업비 총액. 숫자와 일정은 넘쳐나지만, 환경 영향과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정치권의 관심은 ‘이번에 따냈느냐’에 집중되고, ‘이게 맞느냐’는 질문은 사라진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의사결정의 구조다. 지역별로 ‘핵심사업 2개’를 건의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경쟁을 낳는다. 이 과정에서 사업의 본질적 가치보다 정치적 상징성과 표의 확장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도로는 필요에 의해 놓이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곳에 먼저 그어지는 선이 된다.

 

물론 지역 발전은 중요하다. 접경지역의 접근성 개선, 관광 인프라 확충, 지역 경제 활성화—all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반드시 고속도로여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철도, 기존 도로 개선, 친환경 교통망 구축 등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 하나의 해법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선택지를 스스로 지워버린다.

 

이제는 질문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얼마를 따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언제 착공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잃게 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누가 추진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은 욕망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있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는 균형보다 속도, 숙고보다 선언에 가깝다.

 

설악을 가르는 선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국토를 개발하고,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이 결정이 정치권의 손익계산,득표와 예산 확보의 함수로 내려진다면, 그 대가는 결국 자연과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된다.

 

도로는 남지만, 판단의 책임도 함께 남는다.

이번만큼은 ‘반드시’가 아니라 ‘신중히’가 먼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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