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성에서 시작된 질문…‘K-시민’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전우호 (woogongws@nate.com) | 기사입력 2026/04/01 [16:08]

[데스크칼럼] 고성에서 시작된 질문…‘K-시민’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전우호 | 입력 : 2026/04/01 [16:08]

강원도 고성의 바다 끝, 분단의 경계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그곳에서 새로운 선언이 울려 퍼졌다. 통일전망타워에서 열린 ‘K-시민 노벨평화상 추천 세계 대장정’ 출정식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자, 하나의 도전이다. 과연 ‘국민’이라는 집단이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특정 정치 지도자나 단체가 아닌, ‘시민’ 그 자체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발상은 파격적이다. 그 배경에는 2024년 12월 3일의 정치적 위기를 평화적으로 넘겨낸 시민들의 집단적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폭력이 아닌 참여로, 혼란이 아닌 질서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부심. 이 서사는 분명 한국 민주주의가 축적해 온 중요한 자산이다.

 

 

노벨평화상은 오랫동안 전쟁을 멈춘 지도자, 인권을 위해 헌신한 개인, 혹은 국제기구에 수여되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평화’의 정의 역시 확장되고 있다. 갈등을 억제하는 능력뿐 아니라, 사회 내부의 균열을 비폭력적으로 관리하는 시민적 역량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K-시민’을 하나의 평화 주체로 내세운 이번 시도는 충분히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상징성 또한 의미심장하다. 출정식이 열린 고성은 단순한 지역이 아니다. 비무장지대(DMZ)와 맞닿은 이 공간은 분단의 상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평화의 가능성을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곳이다.

 

분단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평화의 대장정’이라는 서사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갖는다. 한국 사회가 겪어온 갈등과 그것을 넘어서는 시민의 힘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이 운동이 곧바로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노벨위원회의 판단 기준은 단순한 상징이나 감동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적 영향력, 지속성,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실질적 기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국민 전체’를 수상 주체로 설정하는 것 역시 전례가 많지 않은 방식이다. 그만큼 설득의 논리와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시도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캠페인의 진짜 의미는 ‘수상 여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즉 “우리는 어떤 시민인가”에 대한 성찰에 있다. 100만 서명 운동은 단순한 숫자 채우기가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한 집단적 응답을 모으는 과정이다. 참여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운동의 정당성을 만들어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외부를 향한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내부를 향한 약속이라는 점이다. 생명 존중, 사회 통합, 비폭력적 갈등 해결이라는 가치가 일회성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이 가치가 현실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실천된다면, 그 자체로 이미 노벨평화상이 지향하는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결국 고성에서의 출발은 ‘결과’를 향한 행진이라기보다 ‘과정’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위원회에 서명지를 전달하는 그날이 이 운동의 종착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이후, 한국 사회가 이 선언을 얼마나 지켜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성은 늘 경계의 도시였다. 분단의 경계, 긴장의 경계, 그리고 가능성의 경계. 그곳에서 시작된 이번 시도가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좌표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첫걸음이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벨평화상은 결과로 주어지는 영예다. 그러나 평화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금, 고성에서 시작됐다.

 

 

  • 도배방지 이미지

PHOTO
이동
메인사진
인제군 벚꽃 흩날리는 그 거리에서, 다시 봄을 만나다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